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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EIU 인사이트] (No.4) 팬데믹 이후 세계에 대한 우리의 선택
  •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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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세계에 대한 우리의 선택
 
일란 켈만(Ilan Kelman), 런던대학교 재난보건학과 교수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 유행)은 우리의 삶과 생계를 뿌리 채 흔들어놓았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활발한 해외여행을 해왔을 테지만 이제 해외 이동은 장기간 제한되었다. 우리 대부분은 자주 큰 어려움 없이 자신이 선택한 것을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면서 원할 때 필요한 것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분명히 힘들게 벌고 또 당연히 받을 만한 수입을, 나가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좋은 음식을 먹는 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삶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매일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씻을 물을 충분히 쓰면서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은,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이 글을 읽을 기회를 결코 가지지 못할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경험이 아니다. 보건의료체계의 각종 문제점들이 있지만, 우리는 건강이 좋지 않다고 생각할 때 의료진의 진찰을 받고 적절한 조언과 치료를 기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다.
 
우리가 팬데믹 이후 세계를 생각할 때, 세계시민성과 연대의식을 형성하고 추진할 기회를 모색한다는 것은 이러한 노력을 이끌어갈 선택권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일까? 그들 대부분에게, 팬데믹이란 주로 생계 기회가 줄어들고 질병으로 죽을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근본적인 질문
 
나에게 있어,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를 선택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간다움(to be human)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재난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 사회에 무슨 짓을 했는가? 우리가 무엇을 더 잘할 수 있나? 그리고 우리의 선택과 함께 어떻게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너무나 자주 우리는 ‘변혁(transformation)’과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같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의미할 수 있는 유행어에서 위안을 얻는 데 그치고 만다. 
 
변혁에 관해 얘기하자면, 우리는 이제 변혁을 목도했다. 봉쇄, 여행 금지, 그리고 사람들과의 새로운 상호작용 방식은 이러한 사회적 변혁을 나타낸다. 중국 일부 지역의 봉쇄가 시작된 2020년 1월말부터 세계의 많은 지역이 일정 수준의 조치를 취한 3월 말까지 전례 없이 빠르게 변혁은 일어났다. 우리는 변혁을 이루었으나 이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회복탄력성에 대해 얘기하자면, 이미 많은 기후 변화 논의에 스며들어 있는 회복탄력성은 생태학에서는 표준 가정으로, ‘정상(normal)’로의 회복 혹은 복귀를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정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가? ‘정상’이라 함은, 마음대로 대륙간 이동을 하는 것인가, 못 하는 것인가? 소셜미디어와 끊김 없는 인터넷 연결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사람들이 굶주린 채 다니는 동안 바로 같은 거리에 늘어선 슈퍼마켓과 식당들이 엄청난 양의 음식물을 버리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이것들은 최근 들어 정상이 되었지만, 인류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표준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우리가 인간과 환경의 착취를 통해 총자원을 과잉 소비하고 이로 인해 사회 전반에 걸친 거대한 불평등을 영구화하는 방식으로 팬데믹 이후 정상성(normalcy)를 회복하고 싶어 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 우리는 실질적인 책무성은 별로 없이 자원과 권력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삶을 결정하는 정상으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당연히 우리는 팬데믹 이전의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사실상 정반대로의 회복탄력성을 선호해야 한다. 
 
우리가 선택한 팬데믹 
 
팬데믹 이전의 정상성의 상당 부분이 애초에 팬데믹의 조건을 만들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팬데믹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우리의 ‘정상적’ 행동의 예로는, 빠른 속도와 광범위한 장거리 여행, 우리가 생태계와 동물을 유해한 방식으로 다루어 이로 인해 미생물의 종간 전이를 도운 것,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밀집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도록 내모는 심각한 불평등을 들 수 있다. 즉, 팬데믹은 특정 미생물의 특성보다는 장기적인 사회적 조건과 일상적인 행동과 더 관련이 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보건의료체계의 상태와 이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이다. 많은 국가들이 일상의 보건의료 문제를 다룰 전문가, 시설 또는 장비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 않다. 위기의 시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일부 국가는 온전히 이용할 수 있는 보건의료 서비스를 모든 시민들에게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이 진단 및 치료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불충분한 보건의료 서비스의 고질적인 위기는 필연적으로 팬데믹 발생과 같은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
 
왜 이런 팬데믹 재앙과 그에 따른 결과를 초래하는 팬데믹 이전 상태로 돌아가야 하는가?
 
심지어 더 부유한 국가들조차도 결국 참담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많은 정부 관할지역들이 취한 한 가지 선택은 봉쇄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사회 기능은 뒤집혀버렸고,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선택권을 거의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훨씬 더 취약하고 훨씬 더 소외되는 지경이 되었다. 대안은 끔찍한 사망률과 함께 바이러스가 퍼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바이러스는 다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장 적게 가진,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다시 공격하려고 하고 있다. 
 
완전한 봉쇄, 대량 사망 또는 이 두 극단 사이의 어딘가로 선택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미 패배했다. 왜냐하면, 이 축의 어떤 곳도 인간다워지도록 돕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팬데믹 예방이 가능한 때가 와도, 우리는 이런 상태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또한, 강력한 봉쇄를 선택한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보라. 봉쇄 조치로 수천 명(혹은 그 이상)의 생명을 구했다는 데 대해서는 논쟁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스트레스 증가, 자살 시도를 포함한 자해, 가정 폭력 및 약물 사용과 같은 정신 건강에 미친 영향에 대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어쨌든 사회 내에서 제대로 치료되지 않는 전염병이며, 우리가 결코 되돌아가서는 안 되는 또 다른 정상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것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것을 뜻한다. 즉, 이는 타인의 정신 건강 상태에 대해 낙인을 찍고, 일상의 폭력을 간과하거나 용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 일개미로부터 인간성을 쥐어짜내버리는 방식으로 생계수단과 보상을 창출하여, 더 이상 부가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매년 세계가 공적국제원조에 지출하는 것보다 약 10배 이상을 국방 예산(기본적으로 위협하고, 해치고, 살상하기 위한 무기)에 사용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국제원조 시스템도 온갖 문제는 있으나, 적어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한다. 한편 각국 정부는 우리가 내는 세금을 사용하여 화석연료 산업을 지원하는데, 팬데믹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재난 예방에 투자하는 것보다 약 두 배나 지원규모가 더 크다.  
 
시민성과 연대
 
그래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시민성과 연대의 중요성이 빛을 발한다.
 
시민성은 한 국가의 여권을 갖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민성은 자신의 힘이 닿는 데까지 사회에 건설적으로 기여하는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인정함으로써 개인을 포용한다.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가능할 때는 타인을 돕는다. 타인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서 스스로 살아가는 특권을 누린다. 사회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힘들고 헌신적인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연대는 특정 이념이나 반대 이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한다(We are all in this together)”라는 팬데믹의 한 캐치프레이즈에 담겨 있는 의미에 대한 것이다. 타인이 고통을 겪지 않도록 도우려 할 때 우리 모두는 함께 인간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서비스 이용 가능성을 제공하고자 할 때, 책임과 자유는 일치한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불평등의 파괴적 영향에 맞서 함께, 또 서로를 위해 일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우리 모두가 시민성과 연대를 고려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는 타인을 위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함을 나타낸다. 팬데믹과 같은 재난이 그러한 자극제 중 하나인가? 우리는 인간다움이라는 개념, 집합적으로 인간다움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데 모이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팬데믹 외교를 보다 광범위한 재난 외교라는 개념의 한 요소로 살펴볼 때 드러나듯이, 항상 그렇지는 않다. 재난 외교는 재난이 새로운 평화와 협력 이니셔티브를 만들 수 있는 방법과 이유를 분석한다. 불행히도, 일반적으로 이러한 분석은 질병 외교에 대해서는 같은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다.
 
하향식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너무 많은 국가와 정부가 바이러스와 봉쇄조치를 이용하여, 어쨌든 그들이 원한 협력을 추구하거나 경쟁자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갈등을 조장하였다. 재난 외교가 장기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결론이다. 그 대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그들 자신들에 치중되었다.
 
심지어 팬데믹의 전형적인 어휘조차도 우리의 기준선을 보여준다. 물리적 근접성 없이도 되도록 사회적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중요한 전제를 전달하는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더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기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문구가 고착되었다. 우리는 팬데믹 이후 세계에 대한 선택으로 더 나은 문명과 더 나은 인류로 나아가는 ‘진입 전략’에 대한 논의보다는 봉쇄로부터의 ‘출구 전략’에 대한 논의를 더 많이 들었다. 
 
상향식 관점에서 보다 낙관적으로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해관계에 따른 편협한 정치를 무시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내내, 보건의료 종사자, 공공시설 관리자, 교통 종사자, 청소원, 쓰레기 수거원, 그리고 식품 산업 종사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시스템을 가동하고 운영하기 위해 계속 현장에 출근하여 일했다. 이들 중 너무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로 사망했는데, 이는 사전 대비 부족으로 필수노동자들이 위험에 처한 데다, 뒤따른 보호조치도 불충분했고 그마저도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필수 노동자들을 고용한 정부가 그들을 대우하는 끔찍한 방식은, 가장 소외된 인구집단 내의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 기간 동안 또 이와 무관하게, 제도적으로 기본적인 보건서비스와 스스로를 위한 안전 조치들도 제공받지 못하는 끔찍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부당한 대우의 문제조차도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깨끗한 물, 하수처리, 위생, 보호소, 지역사회, 보건, 음식, 교육, 그리고 그밖에 삶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부족하여 팬데믹의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영구적인 질병의 조건을 다시 만들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든 팬데믹의 치료
 
불평등과 기본 서비스에 대한 불충분한 접근이라는 이 만연한 질병은 세계시민성과 연대를 통해 치료할 수 있다. 시민성과 관련하여, 만약 우리가 타인의 도움을 받으면서 우리 자신과 서로를 돕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도 명백히 확인된 모든 문제들을 계속 안고 가게 될 것이다. 연대와 관련하여, 한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불의는 우리 모두에게 해를 끼치므로 우리 모두는 함께이다. 이러한 양날의 치료책은 미생물 기반의 팬데믹을 예방하고 2020년 팬데믹을 일으킨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인간다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신이나 행동에서 치료보다 예방에 더 힘쓰는 팬데믹 이후 세계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시민성과 연대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장기적인 만성 질환에 대처하게 될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고 이용하기 쉬운 보건의료체계부터 생태계 및 다른 생물종과의 상호 유익한 상호 작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2020년 팬데믹을 일으킨 장기적이고 기본적인 조건들보다는 훨씬 더 나은 여건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는 우리를 죽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새로운 전염병의 출현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팬데믹 재난은 그렇지 않다. 인간다움을 갖춤으로써 이러한 팬데믹 이후 세계를 창조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Twitter/Instagram @ILANKE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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