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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CEIU 인사이트] (No.5) 코로나19의 정치경제와 글로벌 공조
  •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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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정치경제와 글로벌 공조 
 
김창엽(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사)시민건강연구소 소장) 
 
코로나19를 비롯한 감염병은 생물학적이고 보건의료적 사건인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현상이다. 예방과 치료를 위한 과학은 인공호흡기나 백신과 같은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배분할지 하는 우선순위 문제와 만나고, 외국인의 입국 금지는 방역 효과와 함께 국제 정치경제를 고려해야 한다. 불안과 공포라는 개인 반응조차 인종주의, 식민주의, 신자유주의 등 국가 및 국제적 수준의 사회경제 체제 또는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비약물적 수단(non-pharmaceutical measure)은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감염병의 정치경제란 단지 감염병에 영향을 주거나 영향을 받는 정치적 또는 경제적 요인이라는 의미를 넘는다. 예를 들어, 감염병 영역에서 건강과 보건의료 이용의 불평등은 정치경제의 한 가지 측면일 뿐이다. 
 
감염병 발생부터 유행과 확산, 대응, 결과와 영향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만나는 감염병을 둘러싼 현상과 사건은 병원체와 인간, 다른 비인간(non-human), 사회의 심층 구조로부터 ‘발현(emergence)’한 총체적 결과이다. 정치경제란 결국 그 발현 과정을 종합적으로 해명하려는 존재론이자 인식론이라 할 수 있다.
 
빈발하는 신종 감염병과 인수공통감염병  
 
코로나19는 신종 감염병이자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여기서 신종(emerging)이란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던 병원체가 새로 감염병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새로움’보다는 ‘생성’의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과거에는 인간에 해롭지 않았으나 새로 질병의 원인이 된 데는 어떤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감염원인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인간의 감수성 또는 감염원과 인간의 관계를 둘러싼 조건이 달라진 결과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난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인수공통감염병(人獸共通感染病)이라는 말도 익숙해졌다. 이는 동물이 자연 숙주인 감염병으로 인간에게 전파되어 감염을 일으킬 때 그 감염병을 일컫는 말이다. 인수공통감염병이 곧 신종은 아니라는 점도 덧붙인다. 과거부터 인간 감염병 상당수가 이런 범주에 속했고, 우리가 잘 아는 천연두나 결핵도 본래 인수공통감염병이었다. 최근 사스, 에볼라, 조류 독감 때문에 새로 주목을 받고 있으나, 인수공통감염병은 인간 감염의 60%를 넘을 정도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인류와 공존해온 인수공통감염병이 그것도 신종의 형태로 늘어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두 가지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나, 가장 유력한 이유, 특히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과 동물의 접촉이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분별한 산림 파괴와 경지개발 등이 과거에 없던 사람과 동물의 밀접 접촉을 부추기고 그 결과 동물에 있던 병원체가 새로운 위험을 안고 인간으로 전파된다. 주로 밀림의 야생동물에 존재하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숲이 없어지면서 인간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바이러스는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변화하며 인간과 만난다. 
 
에볼라가 발생한 서부 아프리카 27개 지역을 조사한 결과 최근 산림을 없앤 지역에서 유행의 확률이 더 높았다는 연구 결과는 이러한 신종 감염병 발생의 정치경제를 뒷받침한다. 1998~9년 말레이시아에서 1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니파바이러스 유행 또한 숲을 파괴하여 양돈 농장을 확대한 직접적 결과였다.
 
산림을 없애고 경지를 확대하며 숲속에 축산 공장을 짓는 일은 개별 경제 주체의 시장 행동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이런 현실 변화의 심층에는 지구적 규모의 정치경제 구조가 실재한다. 대상과 영역이 농업, 임업, 축산업 그 무엇이든 한마디로 말해 세계적 규모로 구축된 불평등한 국제 분업체계의 직접적 결과물이다. 에볼라의 ‘체제성’을 연구한 로버트 월래스(Robert G. Wallace)와 로드릭 월래스(Rodrick Wallace)는 이런 신종 감염병 레짐을 가리켜 ‘신자유주의적 에볼라(neoliberal Ebola)’라고 부를 정도다.
 
감염병 유행과 확산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는 작은 유행병(endemic)이 지구적 범유행(팬데믹, pandemic)으로 퍼지는 가장 좋은 조건이다. 지구 전체를 포괄하는 이동성과 연결성이 특히 그러하다. 2009년 유행한 인플루엔자A(H1N1)는 태평양을 건너 전파되는데 단지 9일이 걸렸는데, 당시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든 예상보다 몇 달 이상 빠른 속도였다. 국내 이동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유행 발생 당시 중국 내 항공 이동은 사스 발생 시 대비 열 배 이상 늘어난 상태였다. 
 
세계화된 경제체제에 편입된 이상 어느 국가도 이런 조건을 뛰어넘을 수 없으므로 입국 금지나 봉쇄와 같은 방역 기술은 불가능하고 무용하다. 이 ‘불가능성’은 한국에서 논란을 빚었던 중국 경유자 입국 금지 문제에도 적용된다. 중국이 코로나19 발생을 세계보건기구에 보고하기 전에 이미 몇몇 유럽 국가에 환자가 발생했다는 연구결과가 맞다면, 이동을 막은 것은 검역의 부담을 줄이는 의미 이상이 되기는 어렵다. 
 
정책을 실행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중국발 내국인 입국자가 유행 전에는 하루 1만 3천 명, 유행 후인 2월 초에도 약 3천 명에 이르렀다. 아마도 이들은 대부분 ‘필수적’ 업무로 두 나라 사이를 오가야 하는 경제 주체들일 터다. 국가 간 이동을 금지하거나 이동은 허용하면서 그 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또는 자발적으로 격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국민국가가 감염병 확산을 막겠다는 의지와 역량을 과시하는 것은 방역의 과학이 아니라, 정치, 그것도 주로 국내 정치다. 
 
도시화 또한 감염병 확산과 유행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인에 들어간다. 코로나19가 처음 발생하고 전파된 중국 우한시가 대표적인데, 도시화된 우한은 단지 많은 인구가 밀집한다는 도시의 평면적 특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곳은 산업 생산 기지이자 교통과 교육 중심지로, 세계화된 도시의 특성을 고루 갖춘 곳이다. 
 
춘절 기간 고향을 찾아 이 지역에 머물렀던 5백만 명 이상이 우한 봉쇄 전에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 전파와 유행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많은 이주 노동자 또한 다른 지역과 나라로 흩어져 곳곳에 감염원이 되었다. 이 거대 도시는 중국 사회경제체제, 나아가 세계 자본주의체제에 완전히 통합된 공간으로, 감염이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
 
유행과 확산의 정치경제는 방역 수단과 기술에 통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 유행을 억제하는 유력한 수단 가운데 하나인 이른바 ‘사회적 거리 두기’는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적용 가능성과 범위가 달라진다. 
 
보통의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학교, 종교단체, 여가 활동 등은 비교적 쉽게 이 방법을 적용할 수 있으나, 생산 활동과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개인 수준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어렵다. 경제 활동의 지속성 문제와 함께 노동을 중단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하는 ‘권력’ 문제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많은 노동자는 시간제 임금을 받거나 유급휴가가 없어 일을 쉴 수 없고, 따라서 이들에게 일터에 나가지 않는 사회적 거리 두기는 실천할 수 없는 방역 기술이다.
 
체제 위기와 전환의 가능성 
 
코로나19는 발생부터 유행과 확산, 대응, 결과와 장단기 영향에 이르기까지 그 조건이자 토대로서의 사회경제체제를 드러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경 봉쇄, 병상과 장비 부족, 인종 불평등, 사회적 거리 두기의 실천 불가능성 등은 이와 연관된 몇 가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나라가 국경을 막고 이동을 금지하며 국민국가 중심으로 대응한 것도 허약한 국제보건 거버넌스(global health governance)를 그대로 드러낸 결과이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에서 ‘포스트 코로나’를 점치고 ‘뉴노멀’을 말하는 이유는 대다수가 지금 체제로는 감염병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체제적 불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아프면 직장을 쉴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방역 당국의 ‘권고’는 새로운 노동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에둘러 기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재정 긴축으로 보건과 건강 분야 지출을 억제했던 국가들이 뒤늦게 보건의 ‘공공성’을 강화 또는 복원하겠다는 것도 비슷하다. 
 
권력 관계의 시각에서 보면 체제를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곧 가능성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외부 요인(판데믹)의 충격 때문에 체제가 불안정한 사태를 ‘위기(crisis)’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기존 체제의 지속 또는 변혁 가능성은 거의 전적으로 권력 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을 잊을 수 없다. 
 
현재 국면을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적 의미에서 위기의 ‘병적 상태’라 본다면 기존 권력은 끊임없이 원상태로 돌아가려 투쟁할 것이다. 대안 권력이 새로운 평형을 만들지 못하는 한, ‘회복(resilience)’이란 아마도 원상태(‘old normal’)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미시 체제도 마찬가지다. 한국정부(국가권력)은 이미 ‘K-방역’이 성공했다고 하면서 바이오와 정보통신기술, 그리고 민간공공협력을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 규정했다. 이는 2000년대부터 본격화한 ‘신성장동력’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와 정확하게 일치하며, 또한 한국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자본 축적 모델에 부합한다. 이와 비교해 강화된 공공보건의료를 비롯한 대안적 체제를 촉진할 권력의 크기와 그 토대는 불확실하다. 
 
코로나19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백신과 치료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구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그 해결은 아주 적은 일부 집단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둘러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므로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른 백신이나 ‘소외성 질환’ 치료제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를 비롯한 신종 감염병의 백신이나 치료제는 흔히 시장 규모가 작고 수익성이 낮다. 팬데믹이 안정 국면에 접어들수록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빨리 백신이 개발되어도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백신이라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데는 강고한 국제적 및 국가내 불평등 구조와 메커니즘이 그대로 작동할 것이다.
 
국민국가 중심으로 팬데믹에 대응해서는 그 모순과 불가능성이 점점 더 크게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가장 강력한 이동금지로도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한 국가의 사회경제적 ‘고립’은 일정 기간을 넘기 어렵다. 생산과 소비가 세계 모든 국가를 연결하는 국제적 경제체제에서 특정 국가의 감염병 유행이 간접적으로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팬데믹은 말 그대로 모든 나라에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글로벌과 지역(regional) 수준의 협력과 연대가 절실한 이유다. 문제는 기존 국제체제의 무력함이 드러난 지금 새로운 협력 체제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아직 전망하기는 이르나, 새로운 국제체제의 원리가 코로나19 유행과 그 대응이 남긴 교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아마도 새로운 관계란, 국민국가들이 구성하는 ‘국제관계’를 넘어 좀 더 넓고 깊으며 강한 시민의 연대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국제체제’를 토대로 삼아야 하리라. 또한, 나는 이를 관통하는 핵심 원리가 세계 시민이 실천해야 해야 할 ‘민주적 공공성’이라 생각한다.